귀농귀촌과 노후설계

[스크랩] 귀농 설공과 실패담

솔향기마을농원 2013. 8. 6. 10:45

귀농 실패담
계획성 없는 투자로 빚더미에 올랐다

A씨는 3억원의 여유자금을 가지고 농사에 전념할 생각으로 귀농을 했다. 월 50만원 이상의 소득이 생기려면 적어도 땅이 2000평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토지구입비로 평당 5만원씩 총 1억원을 지출했다.

땅을 구입했으니 이젠 집을 지을 차례. 이왕이면 건강을 생각해서 황토집을 지으려고 200평을 샀다. 200평이라 쉽게 용도 변경할 수 있었고 집을 짓는 데 평당 200만원이 들어갔다. 이렇게 하여 A씨는 대략 2억원을 땅과 집을 마련하는데 썼다.

모든 귀농준비가 끝났다고 여긴 A씨. 그러나 A씨의 역경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시골에 땅도 사고 집도 지었다고 아는 사람에게 자랑해 놨으니 주말마다 손님치레 시간을 뺏기게 되었다. 주말이면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과 밤늦도록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잔을 기울이다 다음날 늦게까지 쉬어야 했고 자연히 농사짓는 일에 게으르게 되었다, 게다가 아직 도시에서의 소비습관을 벗지 못한A씨는 1년동안 그럭저럭 2000만원을 까먹고 말았다.

이제 남은 자금은 8000만원, 정신이 번쩍 든 A씨는 인근의 농업기술센터와 지방농협 등의 영농기술반에 등록해 몇 달간 작물재배에 관한 영농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론에 자신이 붙자 시설원예가 그럴 듯해 보여 6000여 만원으로 200평 비닐하우스 2동을 지어 백합 농사에 도전했다. 그러나 겨울철 하우스 관리에 실패해 백합이 모두 얼어 죽고 말았다.
A씨는 다시 장미에 도전하려 했으나 자금이 부족해 농협에서 연리4% 이자로 영농자금을 대출받았다. 그러나 배합과는 다른 장미의 재배요령을 몰랐던 A씨는 또다시 실패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농사만 지어서는 본전은 커녕 대출금 갑기도 빠듯해져서 농협에 담보로 잡힌 집을 팔고 보니 8000만원도 건지기 어려웠다.

A씨는 어이없게 귀농에 실패하고 그나마 월급이라도 받을 수 있는 일터를 찾아 이젠 이농을 할 처지에 이르렀다.

실패요인
처음부터 땅과 집에 지나치게 많은 투자를 한것이 문제였다. 땅의 경우, 부동산이 아닌 현지인에게 알아보면 훨씬 싸게 구입할수 있다. 농사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계획도 철저하지 못했다. 농사를 지어야 한다면 친구들을 불러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이는 일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귀농 성공담
곰처럼 무던하게 몸으로 부딪혔다

B씨는 2000만원을 지본자금으로 수리하지 않아도 되는 집을 골라 전세로 살 집을 마련했다. 귀농한 후 처음 한달간은 일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다 간이 안 좋아져 요양차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만 하고 다녔다.
젊은 놈이 어쩌다 그렇게 됐냐며 저녁마다 술병 들고 동네어른들이 B씨 집을 찾아왔지만 귀농항 선배들의 조언을 따라 간이 안 좋다는 이유로 정중히 거절했다. 주는 술을 받아먹기 시작하면 다음날 일을 할 수 없기에 생각해 낸 묘책이었다. 그러면서 B씨는 도시에서 살다 온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아는 것도 처음 듣는 양 주민들의 말 하나하나를 성심성의껏 경청해 주었다.
이후 B씨는 반년 동안 동네에서 품앗이를 해 생활비를 벌며 농사짓는 법을 터득해 나갔다. 일이 서툴러 남들보다 품은 적게 받았지만 재배기술을 배우는 셈치고 무던하게 농사일에 매달렸다.
1년쯤 지나니 주위에서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어볼 것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속으론 뛸 듯이 좋았지만 B씨는 땅 빌릴 돈이 없어 힘들겠다며 한 발짝 물러났다. 그러자 동네 어른이 평생 품앗이나 하며 살거냐며 놀리는 땅이 있으니 한번 농사를 지어 보라고 권하였다. 물론 무료로 땅을 임대해 주었다.
B시는 딱 200평만 임대해서 유기농 농사를 시작했다. 자기 몸이 안 좋으니 농약을 쳐서는 곤란하다며 주위에 핑계를 대고는 유기농을 실천했다. 혹 풀로 쑥대밭이 된 밭을 보다 못한 이웃이 몰래 제초제를 주기도 했지만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일을 피하기 위해 모르는 척 넘어 가기도 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의 도움과 관심을 받으면 농사를 지은 B씨는 귀농 3년차가 되었을 때 5000평을 경작하는 농부가 되었다.

성공요인
외지인을 반기고 술을 권하는 시골 사람들의 습성을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물리친 아이디어가 주효됐다. 처음부터 땅을 사지 않고, 즉 직접 투자를 하지 않고 농촌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배우면 신뢰를 쌓은 것도 좋은 방업이었다. 농촌사람은 외지인에 대해 거칠고 배척하기 쉽지만 일단 믿음을 가지면 스스로 돕기 위해 나선다는 것을 잘 이용했다. 결국 소처럼 무던히 일하며 1년을 투자해 큰 돈들이지 않고 농촌에 정착하는데 성공했다.

블러그 <오래된 미래> 중 발췌

출처 : 소나무박사-소나무,조경수,유실수,정원수,묘목,분재.나무,모든것
글쓴이 : 소낭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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