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재 이야기

[스크랩] 수형으로의 초대

솔향기마을농원 2013. 5. 29. 17:53

출처 : 盆栽 樹形論 <吳  榮 澤> -中-  1.1수형으로의 초대

 

 

 

1. 수형으로의 초대

 

누구나 분재를 창작할 수 있는가? 이는그렇다, 아니다식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분재를 예()와 도(), 예술 행위이며 문화 행동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분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만만한 장르가 아니다. 그러나 창작에 대한 부담을 덜고 즐김과 감상을 위주로 한다면 분재는 어린 아이들부터 고령의 어른에 이르기까지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취미가 된다. 

 

수목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길러보려는 마음은 곧 분재의 시작이다. 나무가 죽던 살던 나 몰라라 하는 식은 곤란하다. 분재 애호가로서 실격이다. 나무의 건강한 상태를 「수세(樹勢)」라고 한다. 수세를 좋게 배양할 수 있어야 비로소 수형 만들기를 시작할 수 있다. 자신의 건강을 신경 쓰고 관리하듯 소장목의 건강을 관리하는 일, 수세 관리는 마땅히 행해야 할 주인 된 도리이다.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1-1) 분재의 시작

 

분재를 하려면 다음의 내용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첫째, 나무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즉 나무가 살아가는 환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햇빛과 공기와, 물은 나무가 살아가는 3 요소이다. 분재는나무의 삶에 사람이 개입함으로써 시작되는 행위이다. 분재인들은 그 행위를 거듭하면서 늘  사람 본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생각을 나무 본위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자연에서 자라는 나무를 분 위로 옮겼을 때 나무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배려하고, 덧붙여 분 위의 저 나무가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도 찾아 주어야 한다.

 

둘째, 분재의 예술적 속성을 깊이 이해할수록 자기 고유의 분재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분재는 대자연의 축경을 기본으로 여기지만 보편적인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자연의 특질을 응축하여 재창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분재는 그저 나무를 아름답게 가꾸는 행위가 아니라 한 그루 나무 마다 독특한 존재감을 표출해야 하는 독자적인 예술 장르이다.

 

셋째, 또한 분재의 예술성에 대한 인식은 늘 배양 및 관리 기술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분재는 예술과 기술의 양면성을 갖는다.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분재관을 갖추어야 한다.    

 

넷째, 배양 및 관리에 관한 기술은 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며, 배양 및 연중 사이클을 알고 실천함은 더욱 중요하다. ,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에 따라 무엇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다시 월별로 세분화하여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가장 좋은 시기에 반드시 해야 한다는 뜻의 적기필행(適期必行)’은 배양 및 관리의 금과옥조이다. 

다섯째, 좋은 분재 소재가 갖추어야 할 핵심적 기준들을 체득해야 한다. 뿌리 뻗음 (근장), 그루솟음새, 줄기의 모양, 줄기의 가늘어짐과(고케준, コケ順) 가지의 배치(枝順), 상처 등이다. 좋은 소재가 모두 명목이 되지는 않겠지만 자신이 가꿀 나무를 고르고, 키우고, 감상하는 과정에서 이들 기준은 항상 유용하므로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여섯째, 혼자하기보다 함께하는 것이 낫다. 동료와 선후배 분재인들 나무보다 우선하고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분재를 하면서 빚어지는 갈등들은 대부분이 나무가 원인이다.  예의를 지키고, 모든 것을 공유함에 인색치 말고, 조언과 비평, 심지어 비판조차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곱째, 소장목의 가치를 상승시키려는 목적의식을 가져야 한다. 명목은 우리 분재 문화의 자산이 되고, 배양 기록은 자료가 된다. 자산과 자료 없이 역사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성공은 물론 실패한 과정조차 어느 하나 버릴 수 없을 만큼 모두가 소중하다. 오래 키워야만 완성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3년을 주기로 완성을 단락 짓는 배양 계획을 세워 실천해야 한다. 실력과 안목이 증진됨은 물론 즐거움과 기쁨이 배가 될 것이다.

 

1-2)  수형에 대한 이해

 

수형이 곧 분재다. 분재의 근원이 수형이며, 꼭 알아야 할 분재 기술은 빠짐없이 수형과 연관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전정과 철사걸이는 식물의 자라려는 힘을 컨트롤하여 수형을 완성하는 기술이다. 철사걸이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줄기 또는 가지를 자를 것인가 남길 것인가의 판단은 그 나무의 장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순 하나, 가지 하나 자르고, 철사를 거는 일 모두 수형의 완성도를 높이고 수격을 향상시키기 위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길이다.  

 

수형 구상이란 ‘그 나무의 독특한 존재감을 표출하기 위한 계획이다. 계획이 명확할수록 작업 과정은 구체화된다.  잘 짜인 계획은 배양 관리를 용이하게 하며 수형의 1차 완성기간을 단축시킨다. 수형 구상은소재가 갖는 매력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차분히 소재를 관찰하면서 구상을 시작한다. 서둘 필요는 없다. 그 시간 속에서 큰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구상이 명쾌하지 못하면 다음으로 미룬다. 즐거움을 또다시 얻게 되거늘 마다할 이유는 없다.

 

수형을 이해하는 첫 단계는 다음의 기준들로부터 시작된다.

 

(1) 줄기는 위로 갈수록 점점 가늘어져야 한다.

(2) 좌우 대칭을 만들지 않는다

(3) 줄기의 곡은 아래 쪽이 커야 한다.

(4) 줄기 곡의 외측에 가지를 배치한다.

(5) 좌우후전(左右後前) 교대로 가지를 배치한다.

(6) 가지와 가지 사이의 간격은 위로 갈수록 좁아진다

그러나 위와 같은 기준을 제대로 충족시키는 소재를 고르기란 그다지 쉽지 않다. 학습과 경험을 누적하면서 극복 가능한 결함과 극복 불가능한 결함을 분별할 줄 알게 되면 비로소 소재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수형 구상의 어려움이 줄어든다. 수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소재가 갖는 독특한 매력을 쉽게 표출할 수 있다. 때로는 기준에서 벗어나고 때로는 무시함으로써 창작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된다.

 

각론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기술하겠지만 수형 만들기에 필요한 기준들이 있다. 이를 작법이라 부른다. 아래 소개하는 내용들은 상당수 일본 분재의 작법들이다.

 

(1)    포인트 가지의 활용 : 한 가지를 특히 강조하여 포인트 가지로 활용하게 되면 나무의 개성을 드러내기에 유리하며 처리가 곤란한 가지를 효과적으로 연출할 수 있다.

 

(2)    1지의 위치와 방향 : 1지의 위치는 수고를, 그리고 방향은 나무의 움직임을 결정한다. 수고는 수폭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며 나무의 움직임은 완성된 이미지를 좌우한다.

 

(3)    , 뒷가지의 배치 : 앞가지와 뒷가지는 나무의 깊이를 결정한다. 많은   분재수들이 갖는 취약점 중의 하나가 깊이의 부족이다.

 

(4)    부등변 삼각형의 중복 조합 : 나무의 윤곽과 형태를 잡기에  유용한 기준이다. 삼각형의 형태에 따라 나무가 갖는 이미지가 달라진다. 역삼각형은 긴장감을 유발하며, 밑변이 긴 부등변 삼각형은 안정감이 탁월하다.

 

(5)    공간 조작 : 비어있는 부분은 그 크기와 관점에 따라 여백이라 할 수도 있고 사이라 부를 수도 있다. 본디 여백이란 빈 공간이 아니라 비워 낸공간이어야 한다. 그래야 조작이 가능해진다. 어떻게 비우는가에 따라 전통적, 현대적, 구체적, 추상적 형태로 조형할 수 있다.

 

그러나 몇 몇의 원칙과 기준을 알아도 수형을 구상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수형 의 구상과 창작의 어려움은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원칙과 기준을 벗어나는 케이스들이 많기 때문이다. 소재를 고르기 힘든 것도, 어떤 가지를 잘라야 할지 판단이 난감한 것도, 철사를 걸어 어느 방향으로 보낼지 고민스러운 것도 모두가 소재의 특성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백수 백색 (百樹 百色)이며 천태만상(千態萬象)의 소재로부터 시작하는 분재, 바로 거기에 분재인만이 가질 수 있는 큰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

 

수형을 창작하는데 있어 유념해야 할 또 다른 요소가 있다. 나무가 견딜 수 있는가를 먼저 판단하는 일이다. 소장자는 언제나 빨리 만드는데 관심을 갖지만 그것은 욕심이다. 건강한 나무라야 빨리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거의 진리에 가깝다. 물론 건강한 나무라 할지라도 작업은 최소한의 범위에서 진행되어야 나무가 건강을 잃지 않는다.

 

 

1-3)       부담없이 느긋하게 시작한다.

 

분재란 그 깊이가 한량없어 시간이 흐를수록 만만한 대상이 아님을 절감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필자는 지금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길을 찾아 왔다. 물론 그 과정에는 많은 분들이 도움과 깨우침을 주었다. 노력과 열정이 있다면 누구나 즐길만한 수준의 안목을 갖출 수 있다 뜻이다.  

 

  필자는 제대로의 분재 비평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우리 분재의 발전을 위한 분재 운동의 일익을 자임하고 있기에 프로에 버금가는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누구나 그럴 필요는 없다. 취미로서의 분재라면 부담없이 느긋하게 시작함이 욕심을 버릴 수 있어 오히려 좋다.

 

입문 초보 시절일수록 지갑을 함부로 열지 말아야 한다. 지갑 열기를 우습게 생각해서는 애물단지만 늘릴 뿐이다. 학식과 재력, 배경에 상관없이 입문, 초보자들은 나무에 관하여는 모두가 장님이나 다름없다.

 

입문 이후 적어도 3개월은 나무 없이도 충분히 분재를 즐길 수 있다. 그로부터 약 1년은 안목을 갖춘 선배들의 조언을 받아가며 소재를 구해야 한다. 1년간 조금 씩 조금 씩 분재하는 태도와 즐기는 방식부터 배우기를 권한다. 알면 보이는 법이라 하지 않는가?  

 

수억 상당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애호가도 끊임없이 새로운 나무를 구입하고 싶은 욕망을 떨치지 못함이 인지상정이다. 수백만원 상당의 소재를 갖고 있는 애호가 역시 구입의 욕망에 있어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취미분재에 있어 숫자 늘리기는 능사가 아니라 경계할 바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느긋해야 한다. 그저 그런 소재들이 유혹할 때는 느긋할수록 유리하다. 그러나 좋은 찬스라 판단하면 망설임 없이 제 몫으로 만드는 결단이 필요하다.

 

끊임없는 구매 욕구는 빨리 무엇인가를 얻고, 어딘가에 도달하려는 욕심으로부터 비롯된다. 필자의 경험상 길고 짧음에 차이는 있지만 무엇을 얻고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대체로 1~2년이 필요한 취미가 바로 분재다.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다.

 

 

2. 감각과 감성의 연마

 

 분재 창작과 감상의 본질을 살피면 그 중심에는 수형이 자리잡고 있다. 감각을 연마하고 감성을 수련하는 것은 수형에 대한 안목을 증진시키는 지름길이다.

 

생각을 하되 깊이 하고, 자연과 나무와 책과 전시를 많이 보되 가려보며, 다양하게 경험하되 올바로 해야 하고, 담론하되 진지해야 한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분재 또한 정진하여 안목과 관점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실체를 즐길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자신의 분재들이 뻐김과 뽐냄의 대상이 아니라 즐김과 기쁨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때까지 탐구와 학습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분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으로 잘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돈이 많다면 남의 눈을 빌어 값비싼 명목을 곁에 둘 수 있을지언정 안목에 준거하여 이루어지는 감상의 경지에는 이를 수 없다. 오로지 자신이 도달한 감각과 감성만큼만 즐길 수 있는 대상이 분재이다.

 

2-1)  모방

 

 수형에 대한 이해가 낮고 배양 경험이 부족하다면 흉내내기에서 시작한다. 명목을 살펴 그 수형을 익히고, 자신의 소장목에 적용하여 수형을 구상하거나 가꿔 나가는 것은 바람직한 방식이다. 모방의 대상은 비단 분재 작품만이 아니다. 가로와 공원과 자연 속의 나무들도 자신의 눈길을 끌고, 마음을 움직였다면 모방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한국 전통화 그 중에서도 특히 문인화 속에 표현된 수목들은 형태만이 아니라 의식과 사념까지를 모방할 수 있는 발군의 대상들이다. 보고 느끼기를 거듭하고 읽고 생각하기를 반복하며 촬영과 기록을 계속하는 분재인들의 태도와 자세 또한 흉내내야 한다.

 

흉내내기는 창작의 토대를 단단히 만들어 준다. 그러나 언제까지 흉내내기에만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입문 단계를 넘어 자신만의 독창적인 분재 세계로 나아가야 할 때, 갈고 닦아온 감각과 감성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소재 속에 감춰진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음은 물론 수형의 기초를 만들 수 있게 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 속에서 거꾸로 자신의 감각과 감성을 반영할 수 있다.  

 

2-2) 발상의 전환

 

분재인은 끊임없이 시험에 든다. 소재를 구할 때, 수형을 구상할 때, 가지를 자를 때, 철사를 걸 때 시험에 들 때마다 기존의 작품을 모방하거나 좀더 안목이 높은 사람의 의견에 기대기 십상이다. 사는 즐거움이 크다 하지만 사고 싶은 욕심을 억누르는 재미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좋은 분재다라고 말할 때 의문을 가져보거나 고액으로 거래된 분재는 그 가치의 근원이 무엇인지 따져보는 재미도 크다. 유명 작가의 작품이니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발상의 전환은 의문으로부터 잉태된다. 기존의 방식만을 고집하면 고정관념에 사로 잡히게 되고 그 결과는 창의력의 실종으로 나타난다. 의문은 모든 이가 누릴 수 있는 자유요 권리지만 탐구와 학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독자적인 분재관이란 이렇게 의문에서 시작된 탐구와 학습의 결과이다. 토대가 단단해야 주변의 의견이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발상을 전환할 수 있다. 연마된 감각과 감성에 바탕하여 새로운 발상으로 자신의 소장목과 함께 신명나게 춤추는 경지를 꿈꾸노라면 스스로 행복해지지 않겠는가? 

 

2-3) 자연관찰

 

많은 분재인들이 자연 관찰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자연을 관찰하되 그저 형태에만 머물지 말고, 숲과 수목의 성질과 그것이 표출하는 이미지 즉 형상까지 포괄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좋다. 생성과 발전 그리고 소멸에 이르는 과정 또한 분재인들이 관찰해야 할 대상이다.

 

멀리서 숲을 바라보면 감정과 기후에 따라 매번 느낌이 달라진다. ‘자연(自然)’이란 인위(人爲)’의 반대 개념이다. 대자연은 정형을 갖지 않으며 늘 변화 무쌍하다. 그래서 특정의 자연을 마주할 때면 풍부한 상상력이 요긴하다. 고산의 벼랑에 매달린 소나무 한 그루를 보며 바다 위 외딴 섬 절벽에서 살아가는 해송을 떠올리는 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맑은 날 나무를 바라보면서, 바람이 거세고 눈 비가 내리면 어떤 풍정으로 바뀌게 될까 그려보는 것 또한 상상력이다. 동틀 무렵, 정오와 석양에 따라 나무의 이미지는 어떻게 달라질까를 가늠해 보며, 태어나 지금까지 성장해온 과거와 또 100년이 흘러 어떻게 변화할까 상상함도 즐겁다.  

 

참 좋다 싶은 나무들은 그 움직임에 주목한다. 그 움직임이 태양의 방향과 어떤 상관성을 가지며, 바람의 방향과는 어떤 관계를 가질지 유추해 본다. 나무의 움직임은 곧 자연스러움이다.  움직임이 없다면 자연스러움을 잃게 되어, 인조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관찰도 거듭하여 익숙해지면 나름대로의 방식이 생기게 마련이다. 관찰하고 상상한 내력들을 머리에 담아 두고, 그 시점의 사념과 감정들을 메모하는 습관을 갖는다

 

2-4) 예술과 미학의 이해

 

분재는 사람의 손길을 더해 자연보다 더 자연스런 정경을 표현하는행위이다. 분재를 그저 자연을 모방하거나 자연을 축경하는 것이라 여긴다면 굳이 분 위에 나무를 심을 이유가 없어진다. ‘자연을 넘어서는 그 무엇즉 분재가 독자적인 존재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어떤 측면에서건 자연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탐색하고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과 미학의 기본과 원리를 이해한다면 자연을 넘어서는 그 무엇에 대한 성찰이 보다 수월해진다.

 

시인 조지훈의 글 돌의 미학중에

 

선사의 돌은 자연 그대로의 돌이었으나, 석굴암의 돌은 인공이 자연을 정련하여 깎고 다듬어서 오히려 자연을 연장 확대한 돌이었다. 나는 거기서 예술미와 자연미의 혼융의 극치를 보았고, 인공으로 정련된 자연, 자연에 환원된 인공이 아니면 위대한 예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예술은 기술을 기초로 한다. 바탕에 있어서는 예술이나 기술이 다 아트(art). 그러나 기술이 예술로 승화하려면 자연을 얻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인공을 디디고서 인공을 뛰어넘어야 한다. 몸에 밴 기술을 망각하고 일거수 일투족이 무비법이 될 때 예도가 성립되고, 조화와 신공이 체득된다는 말이다.”

 

인공으로 정련된 자연, 자연에 환원된 인공이 아니면 위대한 예술이 될 수 없다이 말이야말로 분재인들이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자연은 한데 어우러져 많은 요소들이 하나의 정경으로 눈에 들어오지만 분재는 단 한 점의 나무를 통해그 무엇을 표현해야 한다. 단 한 점을 대상으로 삼기에 제약보다는 오히려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역설도 가능하다. 한 점의 나무를 응축된 요소만으로 창작한다면 그 형상과 정취가 자연 이상으로 변화무쌍할 수 있다. 수 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분재가 반듯한 예술 장르로 발전하지 못한 주된 이유는 예술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분재 초년이라도 소재의 줄기는 수심에 이를수록 가늘어져야 하고, 뿌리는 대지를 움켜쥐듯 사방으로 뻗어야 하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꼭 그래야만 할까? 아직까지 필자에게 그 까닭을 묻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필자는 오히려 까닭도 모른 채 그냥 받아들이는 이유를 되묻고 싶다.

 

소위 고케준이라 말하는 줄기의 가늘어짐은 그것이 시선의 속도 (visual speed)를 통제하는 중요한 미적 기제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소위 네바리(근장)라 말하는 뿌리 뻗음은 그곳이 시선의 중심점(focal point)이며 수목 전체의 균형(balance)을 좌우하는 미학적 기능과 상부의 균형있는 성장을 지원하는 생리적 기능을 동시에 갖는다는 정도는 알아야 한다. 이처럼 예술과 미학의 원리를 학습하면 여럿의 원칙과 기준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출처 : 한솔분재농원
글쓴이 : 중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