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여행, 명소

충주읍성과 관아공원

솔향기마을농원 2015. 9. 19. 06:42

 

                              충주읍성과 관아공원

 

 

일명 중앙공원이라고도 부르며, 면적은 약 7,500㎡으로 조선시대 충주읍성 내에 있던 충주목(忠州牧)

 

관아터에 조성한 도시공원으로, 동헌으로 사용하던 청녕헌(淸寧軒)과 영빈관으로 사용하던 제금당

(製錦堂), 수직청인 산고수청각 등 옛 관아건물이 남아 있지요.

 

충주읍성은 임진왜란때 파괴되어 방치되어 오다가 1866년 병인양요를 겪은뒤 전국성첩과 군기를 보수

하여 유사시에 대비하라는 조칙이 내려오자 1969년 충주목사 조병로에 의해 벽돌로 둘레 3,950척

(1.817m) 증축되었고 1871년 개축하여 조병로목사의 품계가 높아졌으며, 1896년 유인식의병 충주성

전투중 북문을 제외한 3개문과 서문수문청을 제외한 3개수문청이 불타는 피해를 입어 1907년 성벽을

헐어 버렸다고 전하며 현재는 성벽이 존재하지 않지요.

 

그러나 관아건물들은 1870년(고종 7) 8월 화재로 소실되어 같은 해 10월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가

중건한 것으로서, 그 이후 내부를 개조하여 중원군청 청사로 사용하다가 1983년 군청이 이전하면서

충주시에서 완전 해체하여 복원한 후 그 일대를 공원으로 꾸몄다고 합니다.

 

관아공원에는 청녕헌과 제금당 외에 충청감영문과 충주읍성 축성사적비, 순교자현양비 등이 있으며,

수령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 소나무 등의 수목과 어우러져 있어 고색창연한 휴식처가 되고 있어 충주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공원의 하나입니다.

 

또한 관아공원은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67호입니다.....

 

 

 

 

 

 

  관아공원의 정문으로 2층 누각 형식의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이며,

                                정면에 충청감영문(忠淸監營門), 뒷면에 중원루(中原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관아공원의 정문인 충청감영문 옆에 공원 표지석이 있어요

 

                                                  관아공원의 전경으로 청녕헌 등 건물이 보입니다.

 

충주목사가 집무를 보던 동헌 건물인 청녕헌(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66호)은 정면 7칸·측면 4칸의 목조와가

팔작지붕 건물로, 공포와 화반 등의 장식이 웅장하고 매우 아름답다고 합니다.

청녕헌은 1870년 화재로 소실뙤어 충주목사 조병로가 중건 1895년(고종32) 충주부 관찰사가 사용하였고

이듬해 충청북도 관찰사의 집무실로 사용되었다가 1907년(순조2).5.23.도청이 청주로 이전되면서 충주군수의

정청으로 이용되었던 건물입니다.

 

 

 

 

 

 

청녕헌 동쪽으로는 영빈관으로 왕실과 관련된 인물이 왔을때 사용되었던 별관건물인 제금당(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7호)이 있는데 이 건물은 단청이 화려하며 정면 7칸·측면 3칸 규모로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예성별관(蘂城別館)이라고도 합니다.

방문하던날 우연히도 제금당의 일부 건물을 한창 보수를 하고 있더군요

 

 

  관아에서 찬간(饌間) 즉 부엌 용도로 썼던 산고수청각(山高水淸閣) 건물이며,

  산고수청각은 제금당의 수직청으로 동헌은 남서향하고 제금당과 산고수청각은 정남향을 하고 있으며,

  청녕헌은 지방관의 아사(衙舍)이고 제금당과 수직청은 왕부(王府)이기 때문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관아공원안에는 순교자 현양비와 읍성 축성사적비가 있었으며,

순교자 현양비는 천주교 박해가 있을대 마다 충주부근의 천주교우들이 동헌에 잡혀와 심문을 받았으므로

이곳에 서린 순교자의 억울함을 위로하기 위하여 세운비이며

축성사적비는 1869년 충주읍성의 축성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비입니다.

 

 

 

     관아공원의 옆에 충주문화회관이 자리잡고 있는데 관아공원과 연계하여 시원한 분수등을 시설해 놓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