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여행, 명소

충주 고구려비

솔향기마을농원 2015. 12. 29. 18:42

                                             

                                             충주  고구려비

 

 

충주 탑평리 7층석탑에서 북서쪽으로 약1km정도 가면 충주지방에 삼국시대의 고구려비석이 있지요.

국보 205호인 중원고구려비가 있는 마을의 이름도 입석마을로 옛부터 돌이 서있다는 뜻으로 입석마을

이라고 하며, 현재의 행정마을 이름도 입석마을 이지요

 

비가 세워진 시기에 대해서는 4세기부터 6세기까지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고구려

남한강 유역까지 영역을 확장한 5세기에 군사적으로나 교통의 요충지인 충주지역에 장수왕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비문에서는 고구려 왕을 ‘고려대왕()’이라고 칭하고 있으며, ‘신라토내당주()’

등의 표현에서 고구려군이 신라의 영토에 주둔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으며.

이외에 고모루성(), 대사자(使) 등 당시의 지명과 관직명도 기록되어 있다고 비석을

해석을 하였는데 아직도 글자가 마모외 훼손이 되어 해석이 불가능한 글자가 많아 완전한 해석은

되고 있지 않지요.

이처럼 중원고구려비는 5세기 고구려의 남진()과 신라와의 관계를 알려주어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며, 특히 고구려의 금석문()은 광개토대왕비() 등 매우 일부만

전해지고 있는데, 이 석비는 한반도의 중부 지역인 남한강 유역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

이 더 높게 평가된다고 합니다.

 

 

 

                                              충주 고구려 전시관 입구입니다.    

 

 

                                      고구려의 상징인 삼족오 모형의 상징탑이 있어요         

 

 

 

공식 명칭은 ‘충주고구려비()’이지만, 일반적으로 신라 시대 충주의 옛 지명에서 비롯된

‘중원고구려비’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의 석비()로

1979년에 향토사가들이 최초로 발견되어 관련 학자들로 조사되어 알려졌다. 1981년 3월 18일 국보

제205호로 지정 되었으며, 원본은 충주시 중앙탑면 용전리 입석마을에 위치한 충주고구려비 전시관에

보존되어 있지요.

높이 203cm, 폭 55cm, 두께 33cm이며, 커다란 자연석을 다듬어 그대로 비면()으로 삼고 있으며,

4면에 모두 예서체로 글을 새겼지만 뒷면과 우측면은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마모되었고,

앞면과 좌측면 일부의 내용만 확인되며 아직도 일부의 글자는 알아볼 수 없는것도 있답니다.

글자 하나의 지름은 3∼5cm로 앞면에 23자씩 10줄, 좌측면에 23자씩 7줄이 있으며, 우측면에는 6줄,

뒷면에 9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중원 고구려비 지도

중원 고구려비

 

         현존하는 충주고구려비의 모습이나 비석이 오래되고

                                          마모가 매우 심하여 대충 살펴보면 글자도 잘 보이지 않는 답니다

 

                          고구려인의 기상을 담은 말을 탄 고구려인의 모습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