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과 율곡이이의 강릉 오죽헌을 가다
오죽헌은 1505년 형조참판을 지낸 최응현의 집이었는데 둘째 사위 이사온에게 주었고 외동딸 용인이씨
에게 물려주었다고 하며, 용인 이씨는 서울에 사는 신명화와 혼인 하였지만 어머니(강릉최씨)의 병간호를
위해 강릉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때 사임당을 낳았으며, 사임당 역시 서울의 이원수와 혼인하였으나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용인 이씨)를 모시기 위하여 강릉에서 지내다 율곡을 낳았다고 합니다.
외할머니 용인이씨로부터 상속받은 집 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많은 것을 보고 권처균이 자신의 호를 오죽헌
이라 지었는데 그것이 집의 이름이 되었다고 하네요
오죽헌을 경내를 돌아보면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발자취와 얼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강릉 오죽헌의 안내도
오죽헌 정문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한후 입장을 하여야 합니다.
율곡이이의 동상으로 조선 성리학에서 이황과 쌍벽을 이룬 사상가.철학자이자 정치가입니다.
매표소에서 입장을 하면 우측에 신사임당의 초충도 화단을 만나볼수 있는데
신사임당이 그린 그림인 초충도에 나오는 각종 식물로 정원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신 사임당 동상
자경문으로 입장하면 오죽헌 경내입니다.
율곡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원래 이 자리에는 어제각이 있었는데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 때 서쪽
으로 옮기고 문성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문성"은 1624년 인조대왕이 율곡선생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문성사에 모셔 있는 율곡 이이의 영정입니다.
신사임당과 율곡이이가 태어난 집으로 조선 중종 때 건축된 조선 중기의 목조 건물이며, 한국 주택 건축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에 속한다고 하며, 1963년 1월 21일 보물 165호로 지정 된 건축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 양식이라 합니다.
안채 건물로 안주인이 거쳐하던 건물입니다.
사랑채 건물로 주로 바깥주인이 거쳐하면서 외부 손님들을 접대하던 곳으로
온돌방, 툇마루, 대청마루로 구성되어 있어요
정조대왕이 1988년 율곡선생의 친필 "격몽요결"과 어린시절 사용하던 벼루를 보고, 책에는 머리글을,
벼루 뒷면에는 율곡선생의 학문을 찬양한 글을 새겨 소중히 보관하라는 명을 내리자 이를 보관하기
위하여 지은 집이라 합니다.
입지문을 나오니 경내를 벗어나는 군요
집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많아 오죽헌이라는 집의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는 오죽이 많으며 잘자라고 있네요
오래된 배롱나무가 경내에 있어요
문성사 건물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는 율곡송이라는 소나무입니다.
율곡기념관으로 오죽헌의 역사와 신사임당, 율곡 이이, 이매창, 옥산 이우, 고산 황기로 등 오죽헌과
관련된 인물들의 면면을 근접거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전시된 유물을 통해 사임당의 지성과
예술성이 그 자녀들에게 대물림 되었음을 확인할 수가 있어요
입지문을 나와 우측에 보면 향토민속관이 있어요
향토민속관의 우측으로는 강릉시립박물관이 같이 있어 오죽헌과 율곡기념관 향토민속관을 같이 관람을
할 수가 있으므로 매우 좋은 것 같네요
오죽헌의 관람을 하고 경포로 자리를 이동하여
경포호수와 경포바다를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산책을 하면서
싱싱한 회로 오찬을 하기 위하여 횟집으로 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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